
이 회색도시에서 당신을 …
마지막 밤
W. 이레
눈을 뜨면 제일 먼저 이쪽을 보고 누운 당신이 보입니다. 우리 다 몸부림이 없는 편이라 눈 감은 그대로 눈을 뜨는 편입니다. 당신이 깰세라 조심스레 몸을 일으키고 발소리를 죽여 방을 나가 아침을 준비합니다. 그러면 얼마 후에 걸어 나온 당신이 졸린 눈을 비비며 내 이름을 부르는데 나는 항상 그제서야 생각합니다. 꿈이구나, 하고. 순간 모든 것의 이질감이 증폭되며 심연 속으로 사라지고, 나만 덩그러니 남아 새 아침을 맞습니다.
벌써 10년은 더 된 당신과 나의 바람에서, 나는 아직도 이런 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제도, 그제도 보았던 장면을 마음이 부정하여 수천수백 번의 아침을 이렇게 시작했습니다. 깨고 나면 기억나지 않는 당신의 목소리와 체향이 매번 안타까워 덮고 있던 얇은 담요만 세게 쥡니다.
무슨 말을 해야 온전히 전할 수 있을까요. 그러고 보니 성당에 나가지 않은 지 꽤 오래되었습니다. 그날에 당신을 보내고 싶지 않아 무작정 기도하던 것이 마지막 방문이었습니다. 십자가만 보아도 당신 생각이 나기 때문이었던 것도 있지만··· 저는 생각보다 독실한 신자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알면 실망할까요. 그저 신앙심과 비슷한 마음을 당신을 향해 품고 있었을 뿐입니다.
나는 당신과 내가 참 비슷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처음에는 그런 면에서 끌렸던지도 모릅니다. 이제야 와서 참 다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분명히 우리가 그리던 것은 같은 꿈이었는데, 흩어진 조각들을 더듬으며 나는 깨달았습니다. 당신이라면 이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부족한 나와는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했을 것이라고.
그러면서 당신의 끝을 생각했습니다. 나에게는 과분한 당신을 내가 원했기에 이런 결과를 초래했다고, 내가 당신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한동안 이 생각에서 헤어 나올 수가 없어 괴로웠던 때도 있었습니다. 지금도 이와 비슷한 생각을 할 때가 드문드문 있지만, 지금에 와서는 정말 부끄럽고 숨기고 싶은 이야기라 잠시 접습니다.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만요.
수정이는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별 탈 없이 건강한 듯도 합니다. 직접 자라는 것을 저는 볼 수 없었지만, 우연으로 길에서 마주치는 경우가 두 번 있었습니다. 여섯 살 때와 열한 살 때입니다. 십몇 년 중 두 번은 아주 드물다 할 수 있겠지만,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 만족하고 있습니다. 나를 조금 닮은 것 같기도 하다가, 당신과 아주 많이 닮아 겹쳐 보일 정도입니다. 당신의 목소리를 잊어버리고 만 지금 얼굴 하나만은 마음속에 그릴 수 있는 까닭입니다. 앞으로 더 자라겠지요. 나와 같은 병을 앓을까 걱정이지만 부디 그러지 않기를 매일 빕니다. 그저 별 탈 없이 자라주기만 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나는 소리 없이 당신을 그리며 아이도 곁에 두었습니다. 지금 와서야 되새기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는 싶지만, 나는··· 당신과 함께 살고 싶었습니다. 당신과 정식으로 교제하고, 우리와 닮은 아이도 두어 당신과의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싶었습니다. 모두 당신이 있었기에 꿈꿀 수 있던 소망이었습니다. 될 수 없을 것이라고 알고 있으면서도 그런 생각을 하면 약간 행복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그저 서글픈 추억이지만요.
이제 와서 쌓아두었던 생각들을 쏟아내는 이유는 내가 이기적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항상 늦어서 이번에는 늦지 않겠노라 여러 번 결심한 끝에도 마지막까지 늦고 맙니다. 나는 다른 시점에서의 죽음을 앞두고 있었기에, 아주 조급해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저질렀습니다. 이제 와서 용서를 구한다고 한들 바뀌는 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어딘가 부족했기에, 기어코 뒤틀린 이성으로 죄를 짓고 만 것입니다.
당신이 이런 나를 보았다면 경멸했을까요. 헛걸음으로 무고한 사람의 생명을 여럿 빼앗은 나를 손가락질하며 욕했을지도 모릅니다. 죽은 사람들은 어디선가 다시 만나게 된다는 어린 이야기가 사실이라고 해도 우리는 영원히 재회할 수 없겠지요. 저는 벌을 받아야 할 테니까요. 제가 모르는 어디선가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어리석고 무책임하고, 이 순간까지 이기적인 저는··· 지옥에 떨어질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