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회색도시에서 당신을 …
그리움
W. 새라
“순경 누님이 이겼어.”
그리 말하며 호선을 그리며 올라갔던 미소를 기억한다. 그것은 너무나도 천진하고 앳된 미소였고, 도저히 내가 알던 허건오라는 남자가 지을만한 그런 미소가 아니라서, 무심코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런 표정이 웃겼던 것인지 그는 푸흐흐, 하고 바람 빠지는 소리를 흘리고는 그대로 뒤돌아 작별인사라도 하듯이 손을 팔랑이며 걸어갔다. 나는 붙잡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뼈저리게 후회했다. 허건오는 이 만남 이후 차가운 시체로 발견되었다. 나는 그 소식을 뒤늦게야 접했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단 하나도. 이제 와서는 다 지난 이야기에 불과하지만.
1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여전히 나는 경찰을 하고 있고 일상은 변하지 않았다. 사건 직후 사라진 정재 아저씨는 끝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처음에는 이곳저곳 찾아다니며 정재 아저씨의 흔적을 찾으려 애썼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단 하나도 발견되지 않았고, 정재 아저씨는 실종 처리가 되었다. 떠나기 전에 한 마디라도 해 줄 수는 없었던 것일까. 하고 아쉬움이 남았지만 이제 와서는 무의미한 일이다.
고작 1년이 지났음에도 까마득한 옛날 일처럼 느껴졌다. 그 정도로 유상일 사건은 나에게 있어 강렬한 기억이었다. 거기까지 생각하자 자연히 떠오르는 것은 노란 후드의 그 남자였다. 자신보다 어렸던, 칼을 쓰던 남자. 허건오. 좋은 인연이라고는 없었지만 죽기 전 마지막으로 만났던 날은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그런 기억이었다.
그 날은 이상하게 잠이 오지 않는 날이었다. 그래서 내친김에 유상일에 대한 단서를 찾아보고자 나온 참이었다. 이곳저곳 돌아다니는데 문득 시야에 익숙한 인영이 잡혔다. 노란색 후드. 일전에 만났던 남자임에 틀림없었다. 여기서 마주치면 소란이 일어날 것이다. 괜한 일은 피하는 것이 좋겠지. 그리 생각하며 자리를 뜨려는데 바닥에 놓여진 나뭇가지가 뒷꿈치에 밟혔다. 바스락, 소리가 들렸다. 아차. 싶어 황급히 발을 떼었지만 이미 그의 시선이 이쪽을 향한 뒤였다. 그의 눈이 나를 알아보고는 매섭게 치켜 뜨였다.
“뭐야아. 그때 그 누님이잖아?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걸까? 응?”
제법 험상궂은 모양새다. 어려보이는 외양과는 다르게 저쪽은 실제로 누군가를 다치게 한 적도, 아마도 죽여본 적도 있을 것이다. 작게 침을 삼키고는 긴장된 것을 최대한 티내지 않으려 하며 입을 열었다.
“내가 뭘 하던지 그쪽이랑은 상관없는 것 아닌가요?”
“허. 순경 누님 말을 잘 못 알아들으시나봐? 내가 한번만 더 눈에 뜨이면 확 쑤셔버린다고 했지!”
“자, 잠깐만요! 여기가 인적 없는 곳이라고는 하지만 통행이 아주 적지는 않아요. 지금 시간이 그렇게 늦은 시간도 아니고요. 지금 저를 죽이면 큰 소란이 일어날 거예요. 설마 그것을 바라시는 것은 아니시겠죠? 그쪽도 곤란할 텐데요.”
“이씨. 한 마디도 안 지려고 하는 것 보게.”
황급히 되는대로 말을 주워 담았지만 반응을 보아하니 제법 먹힌 듯 얌전히 수그러드는 듯 했다. 된 건가? 흘끔 흘끔 바라보자 시선을 눈치 챘는지 노려보는 것에 화들짝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이상하게 예전과 달리 무언가가 다른 것 같았다. 그게 뭔지 곰곰이 생각하다 눈치 챘다. 협박하는 것에 비해 살의가 없었다. 처음 봤을 때는 정말 죽일 듯이 덤벼들었는데. 외모도 그렇고 누님이라 부르는 것을 보아하니 아마 자신보다 비슷하거나 어린 것일까.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긁는 그를 바라보다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지금 생각하면 아마도 혼자 내버려둘 수가 없다고 생각해서일 것이다. 참으로 이상하게도 그때는 그랬다. 사람을 아무렇지 않게 죽이는 남자가 외로워 보인다고 느끼다니. 그때 내 시야에 포장마차가 잡힌 것은 아마도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었을까.
“저, 저기....!”
따끈한 어묵을 한 입 베어 물고는 종이컵에 담긴 국물을 마시자 속에서부터 뜨끈해지는 것이 느껴진다. 그리고는 슬며시 옆을 보았다. 마음에 안 드는 듯 보이면서도 얌전히 어묵을 우물거리는 것이 제법 의외였다. 충분히 뿌리치고 갈 수 있었을 텐데. 잠시 불편한 침묵이 감돌았다. 막상 붙들어놓기는 했는데 생각해보니 둘 만의 공통된 화제는 딱히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유상일 이야기를 할 수도 없고. 그러면 십중팔구 분위기가 다시 어그러질 것이 뻔했다. 그리 생각하며 괜히 어묵 꼬치만 질근거리며 씹는데 옆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님 말이야. 지키고 싶은 것 있어?”
“네?”
눈앞의 남자에게서 나올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한 질문에 제법 놀란 기억이 있다. 그렇게까지 놀랄 것은 없잖아. 라며 조금은 불만스레 투덜거리며 입술을 비죽이던 남자에 자신은 무어라 했던가. 사실 그 부분은 흐릿하니 기억 속에 남아있다. 고작 1년인데 아무래도 사람의 기억은 생각보다 쉬이 망각하는 존재인가 보다. 그저, 그 말을 할 적의 표정이 어쩐지 많은 것을 담고 있어서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던 기억이 난다.
“지키고 싶은 것이 있으면 지키면 돼요. 지키고 싶은 것이 없다면, 그러면.”
‘내가 그 존재가 되어줄까요?’
지금 생각해보면 무슨 정신으로 그 말을 했는지 모르겠다. 어이없는 것은 그쪽도 마찬가지였는지 잠시 눈을 동그랗게 뜨다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멍하니 그 웃음을 바라보고 있자 얼굴이 불쑥 가까워졌다. 놀라서 주춤 한 발자국 물러나자 씨익, 입가에 호선을 그리며 한 손으로는 어묵 꼬치를 들고 어쩐지 유쾌한 기색으로 말했다.
“순경 누님이 이겼어.”
그리 말하며 몸을 물리고는 잘 먹었어, 라는 인사와 함께 손을 팔랑이며 걸어간 그 뒷모습을 잊지 못한다. 어디 가냐고 묻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할 일이 남아 있어서. 라고 말하며 걸어간 그 모습을 기억한다. 그 모습이 마지막이 될 것을 알았더라면 붙잡아둘걸. 하고 후회했다. 그 말의 의미가 무엇이었는지, 어째서 그런 말을 한 것인지. 물어봐도 대답해줄 이는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대화도 제대로 해보지도 않았고, 자신을 죽이려고 한 좋은 추억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그런 남자인데. 이상하게 신경이 쓰이는 것은 대체 무슨 연유일까. 고개를 드니 새까만 하늘에 점처럼 별들이 반짝이며 빛나고 있었다. 그 중 두 별이 가장 가까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어쩐지 눈을 뗄 수 없었다. 저리 가까이 있다고 느껴도 실제로는 생각도 할 수 없을 만큼 멀리 있다고 한다. 그러니 내가 그 사람을 알 수 없는 것도 어찌할 수 없는 일 아닐까.
마지막으로 웃으며 걸어갔던 그 뒷모습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서. 그 날은 잠을 설쳤다.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 것일까. 답은 나오지 않았다.
아마도 그것은. 하룻밤의 환상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그렇다면 어째서 자꾸만 신경이 쓰이고, 가슴이 먹먹하고, 아릿해 오는 것일까. 나는 허건오라는 남자를 왜 알고 싶어하는 것일까. 아마도 그것은, 그리움의 일종이라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째서인지는 모른다. 좋은 추억이라고는 없었다. 그 마지막 밤조차 단순히 변덕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마지막으로 웃던 그 얼굴이 자꾸만 어른거려서.
눈을 감는다.
추억 속 어딘가에서 순경 누님, 하고 불러오는 목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