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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The Woods Somew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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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 자나
  • 자나

    *  *  *

 

     네, 오미정입니다.

 

    경위님. 말씀하신 대로 준비 다 끝냈어요. …두 명 모두 제가 데리고 있고, 홍설희는 지하실에, 박수정은… … 네. …… 가신다고요. …가시기 전에 한 번 들리셔서 확인해보시는 건… …예, 이쪽은 제가 잘 관리할 테니까요. 혹시 시간이 되시면 이쪽도… …네, 괜찮아요. …굳이 오실 필요는 없어요. 네. 믿고 맡겨주세요. 뭐든 다 해드린다고 했잖아요. 당연한 일을 한걸요……. 아뇨, 저는 괜찮아요. …네. 수년간 준비해오신 일이잖아요. 분명 실수 없이 성공하실 수 있을 거예요.

 

    긴 침묵이 있었다.

 

    저기, 경위님. 혹시 시간이 있으시다면……, 제 얘기나 좀 들어주시겠어요. 밤이 늦었으니 켜놓고 노래 삼아 들으시면서 주무세요. 제가 어제 꾼 꿈 말인데요…….

 

     *  *  *

 

    소스라치게 놀라며 일어난 내가 처음으로 느낀 것은 나 자신의 거친 숨소리였다. 젖어있는 볼에 초겨울의 찬 기운이 닿아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나는 왜 울고 있는가. 나는 앞에 놓여있는 암흑을 잠시 응시하다 소리죽여 울었다. 이유 없는 슬픔이었으나, 나는 그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뭉근한 검은 웅어리마냥 머릿속을 뒤덮고 있는 그 암흑은, 잘 기억나지 않는 간밤의, 그리고 또 요즘 매일 꾸는 꿈이었다. 일어나고 나면 기억의 끈이 사라져버려서 되짚어볼 수는 없었으나 그 꿈이 그리 좋은 꿈은 아니었다는 것쯤은 느낄 수 있었다. 질척한 우울은 십몇 년을 약과 함께 버텨보아도 절대로 벗어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리 한참을 통곡한 뒤에 기분이 아주 약간 나아지자, 나는 내 얼굴을 잠시 감싸 쥐었다 풀고는, 어두컴컴한 창밖을 보았다. 달이 하늘을 밝히고 있었으나 그 주변을 둘러싼 구름의 어둠이 너무 짙어 밤이 밝지 못하였다. 나는 잠시 그 광경을 보다가, 이내 침대에서 일어나 겉옷을 입었다. 다리가 심하게 후들거렸다. 그제서야 나는 바닥에 떨어져 있는 약통을 보았다. 아, 나는 분명 자기 전에 저 약 한 통을……. 시선을 돌리고는 옷을 마저 입었다. 약 기운은 조금 있으면 괜찮아지겠거니, 하며. 누군가에게 빌었다. 어서 빨리 흔들리는 시야에서 벗어나서 제대로 생각할 수 있기를.

 

    그렇게 아무런 대책 없이 집을 나섰다. 그리고 인적 없는 거리를 헤맸다. 나에게 길을 알려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가려진 달 아래에 내 발소리만이 울렸다. 나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되묻지 않았고, 대신 내 내면의 우울함에 집중하며 걸었다.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보았을 때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빽빽한 숲뿐이었다.

 

    그 후 수십 분 동안 길을 헤맸다. 들어온 길도 기억이 나지 않는데 나가는 길을 어찌 알겠는가. 그러나 주변에 짙게 깔린 어둠 때문인지 아니면 기묘한 분위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나는 한시바삐 그 공간을 나오고 싶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당신의 이름을 소리내어 불러보았으나 당신도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나 발걸음을 멈출 수는 없었다. 자기 전에 수면제와 함께 복용했던 항우울제의 효과가 사라져 그 자리에 주저앉아버리기 전에 나는 그 공간을 빠져나가야만 했다.

 

    주변을 샅샅이 두리번거리던 그때, 숲속 어딘가에서 여자아이의 비명이 들렸다. 그 목소리는 너무도 익숙하지만 동시에 너무도 낯설어서 나는 그 자리에 멈춰서서 가빠오는 숨을 골라야 했다.

 

    그날의 소리였다. 당신의 모든 것이었던 아이를 앗아간 그날의, 역겨운 소리. 폭발음만 더해졌다면 분명 무력했던 내가 그 건물의 밖에서 들었던 것과 같았을 것이다. 빛나는 섬광이 보이는 듯했다. 그러나 주변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고요했다. 차가운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는 경무관도, 악을 쓰며 구급차 지원을 요청하는 경감도, 우왕좌왕하는 경찰관들도 그곳에는 없었다.

 

    혼란스러운 감정을 정리할 새도 없이, 또 다른 외침이 있었다. 내게는 더욱 익숙하지만 그만큼 더 낯설게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나의 목소리인가, 하고 돌아보았으나 거진 십 년 되는 세월 동안 소리를 죽이며 살아남은 내가 낼 수 있는 소리일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나의 어렸을 적 목소리인가? 딸을 잃은 여자의 절규인가? 연인을 잃은 여자의 비참함인가? 나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나도 겁쟁이인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여전히 없었으며, 내게 유일한 위안이라 할 만한 것은 숲에 내 몸을 잠시나마 숨길 수 있다는 것이었다.

 

    소리에 둔감해진 나는 당신이 다가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당신은 여우의 형상을 하고 있었으나 나는 단번에 당신을 알아볼 수 있었다. 무언가에 미쳐 불타오르는 그 눈. 바라볼 때마다 나도 불타올라 사라질 것만 같은 그 눈을 마주하자 나는 그 밑의 송곳니를 보고도 당신에게 다가가 그 입술에 내 것을 맞추었다. 흐릿한 달빛이 당신을 감싸고 있던 어둠을 몰아내자 그제야 당신의 모습을 또렷이 볼 수 있었다.

 

    차마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처참한 모습이었다. 사지는 본래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문드러져 있었고, 옷은 이리저리 찢겨 있었으며, 그 와중에도 얼굴은 고통스러운 웃음을 지은 채로 그렇게 나를 응시했다. 절뚝거리는 다리를 끌고 와서 입에 문 칼 한 자루를 내 손 위에 올려놓은 그는 몸을 떨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를 따라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나는 한참을 그의 표정을 뜯어보다, 곧 옆에 있던 돌덩이를 집어 들었다. 그의 몸보다 큰 그 돌을 들어 올린 나는 그대로 그의 몸을…….

 

    울부짖었다. 그제서야 잊고 싶었던 질문들이 나를 찾아와 괴롭혔다. 무엇이 그를 상처입혔을까. 그를 집어삼킨 무언가의 이빨은 대체 얼마나 컸을까. 그의 아픔을 끝내주기 위함이라는 이유 하나로 내가 저지른 짓은 정말 정당화될 수 있는가. 손에 쥐어진 칼날을 한 손가락으로 쓸어올리자 손이 베였다. 그러나 통증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내 주변에서 나를 바라보는 시선만이 느껴질 뿐이었다. 분명 아무도 없으리라 생각했는데. 그 눈들은 누구의 눈이었을까. 부끄러움과 공포에 휩싸인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목표를 잃은 그 칼날을 손에 피가 터지라 움켜쥐고 달아나는 것밖에 없었다. 그 피가 당신의 것이었는지 아니면 나의 것이었는지는 지금도 알지 못한다.

 

    나는 마치 쫓기는 사슴처럼 달아났고, 숨이 턱 밑까지 차올라 당신을 만나게 해달라는 기도마저 잊어버리고 말았다. 내가 쥔 칼날은 이제 누구를, 또 어디를 향해야 할까. 다시 만날 수는 없을지라도 당신을 향한 진실한 사랑만큼은 생을 다할 때까지 간직하고 있을 수 있기를 바랐다.

 

    그리고 나는 얼굴이 눈물로 엉망진창이 되어 홍설희가 잠들어있는 철창 앞에서 깨어났다.

 

     *  *  *

 

     상일 경위님. 주무시나요?

 

     …… 영 기분이 좋지 않아요. 그 꿈이 현실이 될까 봐 두렵단 말예요, 사랑하는 경위님, 제발 지금이라도…….

    

     아…… 안 주무시고 계셨군요.

 

     침묵 속에 무언가를 들은 오미정이 웃음 짓다, 이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저도, 저도요. 저도……, …네, 그럼 나중에 뵈어요.

 

     전화를 끊는다. 헛웃음이 나올 뿐이다. 머리를 쥐어뜯는다.

 

     그는 끝까지 그녀의 우상이었고, 그녀는 그의 어리석은 신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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